나는 1979년 12월,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시기에 군입대를 하였다. 광주에 있는 조선대 1학년 재학 중, 학변신검으로 일주일만에 우선징집 대상이 되어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헌병으로 선발되어 1980년 육군 제7102부대 헌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정확히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 위치한 육군교도소 경비부대에 배속된 것이었다.
내 나이, 어느덧 3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20대부터 십수년간 경남에서 DJ를 지지하면서 온갖 고초와 수모를 겪으며 버틴 시간이었다. 새정치국민회의로 입당을 하면서 나는 중앙당 조직국으로 부름을 받았다.
1995년 겨울이었는데 1996년도 15대 총선이 있었기에 조직국에서 당직자로 있기보다 나는 현장으로 가야한다고 하면서 낙선될 것이 뻔한 험지인 창원에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를 하였다. 사실 중앙당 조직국에 계속 있었으면 향후 대선과정까지 중요 보직을 맡으면서 중앙정계로 진출할 수 있었는데 나는 계속 지역에서 한표라도 더 건져야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험지로 자원하여 내려간 것이다.
1997년 나는 의왕시 포일리에 거주했다. 15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1996년 5월30일부터 천용택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했기에 매일 아침 포일리에서 과천으로 나와 과천에서 국회 통근버스로 갈아타고 국회로 출근했다. 1997년 7월 30일 새벽은 수 십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에 남을 만큼 여느 날과 달랐다. 평소처럼 국회 통근버스를 기다리는데 국방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여 알고 지내던 신한국당 국회의원 보좌관이 말을 건넸다.
"이미 끝난 선거인데 왜 나서서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