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곽동진(평당원 이야기 사무총장)
저는 원주 김연종 선배와 같은 당원동지들이 전국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정치인 김대중(金大中)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수 있었고, ‘9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김연종 선배를 만난 것은 1997년 대선 때입니다.
저는 당시 천용택 의원 비서관으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당은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보좌진을 호남과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 파견보냈습니다.
저는 원주 임현호 선배가 위원장으로 있는 원주로 갔습니다.
거기서 김연종 선배를 만났습니다.
처음 인상은 별로였습니다. 차림은 후줄근하고 말도 별로 없었습니다.
공식 선거일이 다가오자 그 선배는 지구당 사무실에서 먹고, 자다싶이 했습니다. 선배는 원주에서 가장 유동인구 많고 보기 좋은 곳을 찾아 플랭카드를 혼자 걸다시피 하고, 방송차는 혼자서 쉬지 않고 몰고 돌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김대중 총재에게 빠져서 평생을 원주에서 김대중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원주가 군사도시라 김대중을 지지하면 모두 빨갱이다. 어머님 회갑 때 동네 유지가 저 집안은 김대중 지지하는 빨갱이라고 잔치 집에 가지 말라 해서 동네 사람이 아무도 안왔다. 그래서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 되면 그 사람에게 사과(謝過)받는게 소원이다.”
김연종 선배는 평생을 김대중만을 따라다니고 지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신부터 5공, 6공까지 군사정권 시기 김대중을 지지하고, 야당을 한다는 것은 빨갱이로 취급받던 시절입니다. 원주는 군사도시였기 때문에 김대중 당과 당원에 대한 배척은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김연종 선배는 젊었을 때부터 빨갱이로 낙인찍혀 출퇴근하는 직업을 갖지 못했습니다. 즉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을 겁니다. 문제는 그 선배뿐 아니라 집안 전체가 피해를 받았을 겁니다. 어머니 회갑이 그 증거입니다.
김연종 선배와는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제가 선배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대선에 승리하여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여름이었습니다.
선배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김연종 선배가 정권으로부터 보답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고 국정운영 경험이 없는 당이었기에 정권교체는 했지만 중앙당은 당원 관리가 어설펐습니다. 선배 개인적으로는 더욱 힘들었을 겁니다. 경력이 없으니 어디 공기관 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사회활동도 범위가 넓지 못해 얻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정권 바뀌었으니 뭔가 있을거라 이야기 들었겠지만 여의도 새정치국민회의 당사와 청와대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 그냥 ‘평당원’이고 ‘지지자 중 한 명’일 뿐이었을 겁니다.
저는 김연종 선배의 비극적 선택에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변하지 않은 현실에서 오는 허탈감, 좌절감’이 원인이었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대통령 김대중을 만들었기에 목표는 달성했지만 그 정권에, 그 정부에 본인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선이후 선배 주변 사람들이 선배를 바라보는 눈이나 대접은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나 평당원이었던 선배를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당 지도부, 그것도 자민련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했던 국민회의 지도부가 관심갖고 챙기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당원이었을 겁니다.
저는 김연종 선배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대중 당’ 깃발을 들고 정권과 지역민으로부터 많은 탄압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김대중 총재만을 지지하고 지지한 ‘평당원’이 있었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김대중이 정계 은퇴후 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든 힘은 재야의 명망가와 학생운동가들의 힘이 아니라 전국 곳곳 특히, 영남과 강원도, 충청도에서 김대중을 믿고 지지한 평당원이라고 확신합니다. 원주의 김연종 선배처럼 평생을 김대중 총재를 지지하고 믿고 따른 평당원이 있었기에 1997년 대선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동네 유지(이장)에게 사과(謝過)받는 것이 소원이었던 원주 김연종 선배를 기억합니다. 김연종 동지는 빨갱이가 아니라 민주화 투사였고,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김연종 동지의 활동 장소가 학생운동가, 노동운동가, 신부님, 목사님, 스님, 그 외 재야인사들처럼 학교, 종교시설, 공장, 농촌이 아니라 제도권 ‘정당’이라는 것이 달랐을 뿐 김연종 동지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민주화 투사였습니다.
김연종 동지의 삶이 정당하게 평가받기를 기원하며 선배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깁니다. 정치인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뛰었던 사람이라면 김연종 동지의 삶을 기억하고, 그 분의 헌신에 경의를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