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이력서에 한 줄 채울 일도 없는, 민주당 당원으로 살아온 세월이 41년 차에 접어들었다.
참으로 기나긴 세월이다. 내 나이 이제 겨우 환갑 지난 나이인데, 그 60년 삶 중에서 41년이란 세월을 민주당 당원으로 살아온 것이다. 내가 63년생이니 내 인생의 2/3를, 오롯이 민주당 당원으로 살아왔다는 뜻이다. 정당 그것도 부산에서 민주당 당원 노릇하며 산다는 일은, 사실 절대 쉬운 선택이 아니다.
경상도 특유의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전라도에서 국민의힘 당원으로 살아가는 일보다 더 힘들다는 게 정답이다. 먹고 살기 위해 부산으로 와서 사는 전라도 출신보다야 낫겠지만, 부산 촌놈이 부산에서 민주당 당원 노릇을 하려면 손가락질받을 각오는 필수다.
그랬기에 나는 고향인 구미(선산) 출신 대통령인 박정희를 증오하고, 전라도민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대통령님을 좋아하는 동시에 원망하고 미워한다. 만일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우리 근대사에 없었더라면, 굳이 내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거란 생각에서다.
인간의 삶에서 또 인간의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통용된다면, 세상 많은 사람이 그러듯이 나 또한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철없이 그냥 뜨거운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니까.
1985년 창당한 신한민주당 당보에서 본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다’라는 김대중 선생님의 어록, 저 한마디가 나를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1980년대 초반은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이 서슬 퍼렇게 국민을 겁박하고, 야당 탄압이 당연시되던 시절이다.
한창 혈기 왕성한 20대 나이의 나는 정말 겁도 없이, 내 발로 당시 관제 야당이라 비아냥거림을 받았지만 유일한 야당이라 할, 민주한국당 지구당사무실로 찾았었다.
그때만 해도 내 생각은, 12대 국회의원 총선거만 돕고 발을 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결정이, 나를 지금까지 민주당이라는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선거운동 기간에 경험했던 살벌한 기억이, 또 신민당 당보 제호 오른쪽 네모 상자에 박혀 있던 김대중 선생님 어록 그것 때문에 말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다.’
바로 이 직설적이며, 청년의 뜨거운 피를 뭉클하게 만드는 말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