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친구의 음식점 위생 문제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영천 주재 기자로 발령 받은 해가 1967년입니다. 이 해에는 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어서 위인은 발령을 받자마자 총선 취재에 투입됐습니다. 7대 총선은 이른바 ‘막걸리. 고무신 선거’로 불릴 만큼 역대 어느 선거보다 혼탁한 선거였습니다.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위한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국회 정족수의 3분의 2이상인 개헌선을 넘는 의석을 확보해야 했기에 그야말로 필사적이었습니다. 금품 살포는 물론 대리투표, 매표 등 각종 부정선거가 전국적으로 펼쳐졌습니다.
영천에서도 과열 혼탁 선거 양상은 다르지 않아서 각종 부정 선거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제 14지역구였던 영천에서는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이원우 후보가, 야당으로는 신민당에는 김상도 후보, 민주당에 안병달 후보가 출마해서 접전을 펼쳤습니다. 위인은 여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저질러지는 금품, 물품 살포 등 부정 선거를 취재해 몇 차례 기사화 하는 등 언론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했습니다. (물론 그 기사를 작성하는 데는 위인이 가진 대범한 형질로서 위인의 손안에 존재하던 나도 기여를 했었고 위인은 유독 볼펜을 강하게 쥐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거 결과는 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고 위인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당시 집권 여당은 츱츱하게도 위인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두 차례 고소를 해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위인은 30여 차례나 검찰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러야 했지요.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공안검사로 유명했던 이우각 검사였습니다. 이 검사는 고소인에게 합의를 통해 고소 취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합의가 되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불기소 처분으로 흐지부지 됐습니다. 이때를 즈음해 위인은 언론인으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회사로부터 이 고소 사건으로 회사 이미지를 실추 시켰으니 직장을 그만 두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미련 없이 해직기자 신세를 자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