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back
새로운이야기
[대구·경북권] 온 몸으로 실천한 정론직필(正論直筆) ‘영남 인동초(忍冬草)’ 이육만님 -4편
평당원이야기
2024-12-25

중정 남산 지하실의 악몽 

 해직기자로 하송 세월을 보내고 있던 위인은 어느 날 영천경찰서로부터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고 영문도 모르고 갔다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려갔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끌려 온 곳은 이름만 들어도 온 몸이 굳어 버리는 중앙정보부, 그것도 한번 들어오면 살아 나갈 수 없다는 악명 높은 남산 지하실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가 당시 수사를 하고 있던 것은 ‘통일혁명당’ 사건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영천 출신의 김종태가 북한으로부터 공작금과 지령을 받아 남한에서 고정간첩으로 암약하면서 통일혁명당을 조직하고 지식인과 학생을 포섭해 결정적일 때 무장봉기를 계획한 것을 사전에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158명이 검거됐고 73명이 송치가 됐는데 김종태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위인은 잠을 안 재우고 구타가 난무하는 일주일간의 끔찍한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지요. 위인에게 혐의점이 모아진 것은 해직기자 시절 김종태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위인이 직접 밝힌 회고담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할 것입니다. 나도 그때는 두려움으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서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상태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종태 하고 친했던 것은 맞아. 해직기자여서 김종태 하고 어울려서 밥도 얻어먹고 용돈도 좀 받아서 생활비로 썼지. 김종태가 나한테 참 잘해줬어. 해직기자라고 기죽지 말고 복직하더라도 공무원들에게 옹졸하게 손 벌리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하면서 한 번씩 용돈을 주 길래 직장도 없는 상태에서 가족을 데리고 입에 풀칠이라도 했기에 받을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김종태가 조사를 받으면서 자기가 돈을 준 사람을 다 불었는데 그 명단에 나도 포함이 돼서 조사를 받게 된 거야. 나뿐만 아니고 그 당시 영천에서만 이 일로 100여명이 불려가서 조사를 받았어. 남산 중정에서 조사를 받는데 아이고, 이 사람들이 안 먹이고 조명을 대낮까지 밝혀서 눕지도 못하게 하면서 잠도 안 재우고 일주일간 조사가 이어지는데 참 힘들었어. 조사 받는 과정에서 이동 할 때 복도를 지나면 방마다 귀를 찢는 비명 소리가 흘러나와서 끔찍했어. 나는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은 당하지 않았지만 조사관들이 조사를 하면서 책상 아래로 군화발로 정강이를 수시로 걷어차는데 발이 뜨뜻해서 보면 피가 흘러나와 발아래가 흥건했었어. 아직도 그때 상처로 생긴 흉터가 정강이에 남아 있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한 번씩 입 안에서 모래알 같은 것이 씹혀서 내뱉어 보면 이빨이 부스러진 조각들이었지. 조사를 받으면서 아픔을 참기 위해 얼마나 이빨을 꽉 깨물고 이를 갈았는지 그 조각들이 떨어져 나온 거야. 이때 이빨을 많이 상해서 30대 후반 나이에 의치를 해야 할 정도였어. 나는 조사 받는 과정 내내 일관되게 김종태로 부터 용돈을 받아 쓴 것은 맞지만 김종태로 부터 받은 돈은 북한 돈과 미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지폐였고 그 사람이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나에게 그런 생각이나 사상을 주입시킨 적도 없었다고 일관되게 진술을 했어. 이건 사실이야. 김종태가 나를 포섭하기 전에 사건이 터졌는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황당하고 환장할 노릇이었지. 그때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그 안에서 보고 당한 일은 절대 밖에서 말하지 않겠고 혹 말하게 되면 처벌을 받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고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기에 이 이야기를 그동안 아무에게도 할 수가 없었어. 운명의 장난이 참 기구하지. 그 뒤에 인혁당 사건으로 또 문제가 돼서 조사를 또 받는 신세가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어.”

0 Comments
No comment(s) po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