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산 민주당이 참패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사하구을 선거구에서 출마한 조경태가 당선된 점이다.
물론 조경태의 국회의원 당선이 중요하다는 말도, 또 민주당 불모지인 부산에서 의석 1석을 얻었다는 사실을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조경태는 15대 총선에 처음 출마하면서, 기행을 보였던 친구다.
당시 20대 후반 나이로 유권자 대부분은 조경태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이해했을지 모르겠지만, 후일 조경태의 행적을 보면 지극히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상의를 탈의한 상태에서 젖꼭지를 드러낸 공보물.
선거에서 그런 사진을 처음 본 유권자 반응은 과연 어떤 반응이었을까?
모르긴 해도 사하구 유권자 중 70~80% 이상이, ‘미친놈!’이란 소리를 내뱉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미친놈 소리를 들긴 했겠지만, 그 공보물 사진이 미친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비록 15%대 득표율을 거둔 정치신인이었지만, 15대 총선 이후 사하구에서 조경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15대 총선 과정에서 보였던 기행이 기행으로 끝이 났더라면, 6선 국회의원 조경태는 절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조경태의 행동은 달랐다.
17대 등원 이후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에, 조경태는 정치권 선배들에게 싹수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노무현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 헤게모니를 쥔 이른바 친노(親盧)라 자처하는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결국 친문(親文)과 극심한 갈등 끝에 새누리당에 입당하게 된다.
당시 나는 민주당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가만히 혼자 놀게 놔두면 무조건 부산에서 1석은 보장되는데….’라면서, 당시 민주당 지도부를 구성하던 친문(親文)을 향한 비판과 조경태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었다.
그리고 내가 한 그 말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도 사하구 조경태 지역구에 가면, 아주 많은 사람이 ‘우리 경태’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 경태’란 표현은, 바로 15대 총선 낙선 후 최소 17대 총선 당시까지 조경태가 해왔던 일(?)에 대한 결과물이다.
내가 아는 바로 조경태는 15대 총선 낙선 후 동네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는 백수였고, 그 백수는 바보처럼 사람만 눈에 보이면 달려가 인사하는 백수였다.
비슷한 나이의 상대를 만나면 서슴없이 ‘형님’ ‘누님’을 연발하고, 연배가 있는 양반을 만나면 ‘아버님’ ‘어머님’을 되뇌고 다녔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이나 아주머니가 작은 짐보따리라도 들고 가면, 달려가서 그걸 대신 들고 집까지 들어다 주는 일이 조경태의 일상이었다.
처음 조경태를 거리에서 만난 사람은, 당연히 웬 미친놈인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신분이 증명된 미친놈이니, 아주머니나 어르신들이 딱히 겁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미친놈이라 생각되는 놈이어도 본인에게 피해주지 않으니 멀리할 이유가 없었을 거고, 그런 상황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면 다가와 그 짐을 대신 들어주니, 어느 순간부터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조경태는 최소 8년을 지역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팔았고, 그 결과 유권자인 사하구민에게 ‘우리 경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족이 된 것이다.
그런 조경태였으니 총선 때마다 민심이 돌아설까 걱정되는 민주당 간판보다야, 지역 유권자가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새누리당 간판이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종종 정치하겠다는 후배들에게 당선이 목적이라면,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지만 조경태의 선거운동 방식을 참고하라고 권한다.
물론 웃통을 훌떡 벗으라는 말이 아니라, 지역에 철저히 천착하라는 의미다.
어쨌든 17대 총선이 부산 민주당으로서는 반전의 기회였지만, 노인 폄훼 발언으로 오히려 쌍놈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산 민주당에는 또다시 암흑기가 찾아왔고, 그런 암흑기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사건이 2010년 실시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사실 5회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과정 또한 만만찮았다.
내가 조직을 담당하지 않았기에 저간의 사정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부산 14개 선거구에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하겠다는 기초단체장 후보조차 구하지 못해 빌빌댔었다.
딱 절반인 7개 선거구에 민주당 후보를 공천하고 야권 단일후보 이름으로 세 군데를 더 공천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4개 선거구는 아예 기초단체장 후보조차 내질 못했었다.
심지어 기초의원 후보조차 공천하지 못한 지역이 수두룩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김정길은 부산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했지만, 뜬금없이 부산시장 후보 출마를 선언한 김민석의 방해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김민석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려 했던 이유는, 지방선거 이후 유죄 판결을 받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김정길 캠프의 조속한 경선 요구를 갖가지 핑계로 미루던 김민석은 후보 등록 직전에야 경선에 응했고, 이런 김민석의 행위는 결국 야권 후보단일화 작업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김정길은 부산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서, 기적과도 같은 3당 야합 이후 부산 민주당이 거둔 최고 득표율인 44.57%를 득표했다.
그리고 이후 부산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우리 민주당은 대부분 지역에서 40%대 득표율을 얻었고, 4년 후 6회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을 5회 지방선거보다 2배 이상의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또한 마찬가지다.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20대 총선 당시는 박근혜 정권 인기가 바닥을 치던 시기였고, 반면 문재인이 차기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었다.
우리 민주당은 이 20대 총선에서 3당 야합 이후, 처음으로 18개 선거구 중 5석을 확보하는 쾌거를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의 쾌거도 오래가진 못했다.
4년 후 실시된 21대 총선에서는 3석으로 줄어들더니, 지난 22대 총선 결과 전재수 의원 하나만 살아남는 참담한 결과를 보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부산 선거는 일종의 공식이라 할 무언가가 존재한다.
1990년 3당 야합 이전 부산 민주당은 김영삼이 부산의 맹주 노릇을 하면서 선거를 진두지휘했고, 12.13대 총선 압승을 견인했다.
그리고 17대 총선 분위기 또한,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을 배출한 분위기가 초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17대 총선 선거운동 개시 전날인 4월 1일 정동영의 노인 폄훼 발언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당시 부산에서도 어쩌면 열린우리당 압승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아래 링크는 17대 총선 직전인 2004년 3월 16일~3월 25일까지 부산 전 지역의 여론조사 결과를 취합한 결과다.
기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우세를 보였었고, 영도구 김정길처럼 압도적 우세를 보인 지역구도 적지 않았었다.
이런 압승 분위기가 정동영 당 의장 발언 한마디에 의해 완전히 날아간 것이다.
17대 총선의 부산에서 우리 당 압승 분위기를 견인한 주체가 부산 출신 대통령인 노무현이었다면, 제5회 지방선거 이후 부산 민주당 회생 분위기를 견인한 주체는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던 김정길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20대 총선은 차기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문재인이 그 주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일련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자면, 부산 시민의 표심은 정치권 사람들이 흔히 남발하는 진영, 그러니까 보수·진보 성향과는 거의 무관한 행태를 보인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인물이 등장하면 화끈하게 밀어주고, 그 가능성이 사라졌다 싶으면 외면하는 행태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부산 시민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표현이 되겠지만, 이런 점을 두고 생각한다면 부산 시민에게 정치 민도를 따지는 건 아예 무가치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따라서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선거에 출마할 후보라면, 이 점을 깊이 고민해서 선거에 임해야 할 거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