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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경남권
[부산] 부산에서 민주당원으로 산다는 것은 이재호님 -7편
평당원이야기
2025-01-16

김정길과 나(2)

 

사실 김대중 대통령님과 나 사이에는 특별히 내세울 일이 하나도 없다.

그냥 김정길이라는 정치인이 김대중 대통령님과 당을 함께하면서, 당총재와 대통령님으로 모셨기에 나는 김정길 사람 중 하나로 그 뒤를 따랐을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김대중 대통령님을 존경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인동초 같은 삶을 헤쳐나오면서도, 절대 신념을 굽히지 않으셨던 그 점을 존경할 뿐이다.

김영삼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외치고도 대권욕에 눈이 멀어 그 길을 포기한 거와 달리,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목숨을 위협받으면서까지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다’라는 그 말을 끝까지 지키셨던 분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전라도 출신으로 부산에서 민주당 활동을 하던 사람과, 경상도 출신으로 민주당 활동을 하던 사람이 가진 생각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을 대하는 시각 차이 또한 크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라도 특히 광주·전남 지역민들의 정치적 민도를 높이 사는 쪽이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마음에서는, 호남과 경상도 사람의 결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다. 
 
호남 사람에게 김대중 대통령님은, 박정희 정권 이후 시작된 지역 차별에 대한 한(恨)풀이 구심점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 인식으로 인해 김대중이란 정치인을 바라보는 전라도민의 시각은, 대통령님의 정치적 업적을 조명하는 일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이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라도 사람이 보는 시각과는 제법 차이가 있다.
 
경상도 사람에게 김대중이란 인물은,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면서 대한민국 정치인 그 누구보다 양심을 가진, 그러면서 누구보다 뛰어난 정치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한다는 점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독대할 위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지자 대부분처럼 정치인 김대중을 따라다니면서 만세 부를 처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냥 나로서 할 수 있는,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지지하고 존경을 바쳤을 뿐이다.

내가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과 인연을 맺은 이후 그 양반을 따라다니던 27년 넘는 세월 중에서, 1990년대 1월 3당 야합 이전까지 삶은 만족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3당 야합 이후 첫 선거인 14대 총선, 그리고 사하구 보궐선거부터는 고난과 배고픔의 나날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사실, ‘낙선’ ‘낙선’ 또 ‘낙선’….

김정길은 3당 야합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부산에서만 자그마치 7번의 낙선을 경험했고, 그 낙선의 경험은 내게도 똑같은 아픔으로 다가왔다.

내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이후 자주 찾는 장소가 생겼는데, 그곳은 항상 인적이 드물면서도 이왕이면 파도가 조금 강하게 치는 곳이었다.

그래서 찾은 장소가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한 이기대 선착장과 송정해수욕장에 있는 구덕포구 그리고 공수마을이다.

선거에서 패하고 나면, 정말 한동안은 아는 사람 얼굴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진다.

패배의 자괴감보다는, 쪽팔려서 사람들 얼굴을 대하기가 두렵다.
 
선거에 패했을 때마다 나는 항상 주변이 컴컴하면서도 인적조차 없는 이기대 선착장을 찾았고, 강하게 들이치는 파도가 선착장 위까지 들이칠 때면 휩쓸려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역설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었다.

우스갯소리일 수 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첨언 하자면, 바로 김정길 전 부산시장 후보가 제5회 지방선거에서 패한 이후 이야기다.

김정길은 3당 야합 이후 부산에서 치러진 제5회 부산시장 선거에서, 우리 민주당 후보가 거둔 역대급 득표율인 44.57%를 득표했지만 낙선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달리 당선자와 득표율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던 탓에, 오히려 그런 점이 김정길 후보에게 심리적 타격을 입혔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김정길 후보를 내 차에 태우고, 해가 져 컴컴해진 이기대 선착장을 찾았다.

지금이야 그 주변을 개발해서 관광지가 되었지만, 그때 이기대 선착장 주변은 가로등 하나 없는 암흑천지였다.

“장관님. 내리시지요.”
“여길 왜?”
“속 터질 때는 이곳이 최곱니다.”

그렇게 김정길 후보를 꼬드겨 차에서 내리시게 하고, 나는 선착장 가장자리로 안내했다.

방파제조차 없어 파도가 칠 때면 항상 바닷물이 올라와 발을 적시는 곳이었기에, 그곳을 자주 찾는 나로서도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너, 나 여기서 밀어버리고 싶나?”

천하의 김정길도, 사방이 깜깜한 이기대 선착장 분위기는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사실 김정길이 연이은 7번의 낙선이 아니라, 국회의원 배지를 달 기회는 두어 차례 있었다.

그중 한 번이 김대중 대통령님 탄생 100주년을 기억하기 위한, 광주 MBC 영상에도 언급했던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 정무수석직 사표를 제출했을 때, DJ께서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약속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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