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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이야기
[대구·경북권] 온 몸으로 실천한 정론직필(正論直筆) ‘영남 인동초(忍冬草)’ 이육만님 -11편
평당원이야기
2025-02-23

뿌리 당원 1호 


 13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김대중의 ‘4자 필승론’이 틀렸음을 입증했습니다. ‘4자 필승론’은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가 영남권을 나눠 갖고 김종필 후보가 충청권을 가져가면 김대중 자신은 수도권과 호남의 지지만으로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선거 공학적 판단이었습니다. 13대 대선에서 실패한 김대중은 다음해 치러진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이 바람을 일으키며 70석을 확보해 김영삼의 민주당을 제치고 제 1야당 당수로 우뚝 서게 됩니다. 당시 선거 결과는 민정당이 125석, 평민당 70석, 민주당 59석, 공화당 35석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된 것입니다.

 위인은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12대 국회의원 선거와 마찬가지로 안병달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13대 총선 때 안병달 후보는 평민당으로 대구 동구에 출마를 했었고 위인이 지구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천 선거구는 위인이 동교동에 소개한 조병환 후보가 평민당으로 출마를 했습니다. 위인은 영천과 대구 두 곳의 선거구를 왔다 갔다 하며 두 사람의 당선을 위해 목이 쉬도록 지지를 호소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낙선했습니다. 평민당이 전국에서 70석 확보로 제1 야당이 됐다고 하지만 위인으로서는 영남에서 ‘김대중  정당’의 한계를 확인한 선거였습니다.

 김대중과 평민당은 여소야대의 민주화 정국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군사정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국회 청문회가 TV로 생중계 되었고 후일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청문회의 스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때 활동한 평민당 소속 국회의원이 정대철, 조세형, 박상천, 신기하, 이해찬, 한광옥 등으로 위인과 평생 정치적 동지가 된 사람들입니다. 특히, 위인보다 나이가 3살 어렸던 신기하 의원은 위인과 가장 친하게 지내며 너나들이 하던 정치인입니다.

 여소야대 정국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뒤엎을 전략을 구상하고 1990년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서로 합치는 이른바 3당 합당을 발표합니다. 이로써 217석의 거대 여당이 탄생하고 여소야대 정국은 순식간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변했습니다. 김대중의 평민당만 유일한 원내 야당으로 남아 ‘호남 고립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3당 합당을 반대했던 통일민주당 내 이기택, 김상현, 노무현 등은 이른바 ‘꼬마 민주당’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실 노태우 정권은 김대중에게 합당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호남을 기반으로 정치를 해왔던 김대중으로서는 5.18 민주화운동의 가해자인 5공 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은 “국민이 만든 여소야대가 불편하다고 마음대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키는 일이고 정치 윤리를 망치는 일입니다. 끝까지 야당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고 싶지, 합당을 통해서 정권을 잡고 싶지 않습니다.”라면서 합당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위인을 비롯한 동교동계 가솔들의 생각도 같았습니다. 김대중과  평민당의 ‘호남 고립화’는 영남에서의 김대중 지지세를 거의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위인의 정치적 행동반경은 더욱 좁혀질 수밖에 없었고 마음은 위축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3당 합당이 있을 즈음 영천에서도 위인의 많은 지인들이 위인에게 김영삼 쪽으로 넘어와서 정치를 함께 하자고 권유를 했었지만 위인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원래 있던 자리를 지켰습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 등록을 사흘 앞둔 어느 날 밤, 자정 즈음에 위인의 집에 전화가 한통 걸려 왔습니다.

 “나, 대중이오. 이육만 동지 아니요?”

 “누군데 이 밤중에 장난 전화질이야, 너 누구야? 당장 전화 끊어.”
 
3당 합당이후 김대중은 호남에 고립되어 있었고 위인은 영천에 고립되어 있던 터라 위인은 DJ가 야심한 밤에 직접 전화를 걸어올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장난 전화로 치부하고 끊어버렸습니다. (나는 위인이 잡은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김대중 총재인줄 바로 알아 차렸는데 위인은 장난 전화로 오해했지요.)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영천에서 김대중을 조롱하고 희화화 하는 일이 많았고 이런 식으로 장난 전화도 종종 걸려 왔기에 그런 의심은 당연했습니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나요. 이육만 동지. 나 김대중이오.”

 “아이구, 총재님께서 이 밤에 웬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이 동지, 이번 총선에 영천에서 이 동지가 좀 나가주시오. 물론 영천에서 나 김대중이가 출마해도 당선 안 된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연말에 대선도 있는데 영천에서 총선 후보를 내지 않으면 뿌리가 없어집니다. 이 동지가 뿌리당원 1호 아니요? 누군가는 이 뿌리를 계속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출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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