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온종일 잔뜩 긴장한 가운데, 아침과 점심조차 거른 채 시간이 흘렀다.
“이재호!”
“예.”
해가 져서 지하실 환기구에도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나를 담당했던 하 형사가 지하로 내려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하 형사는 혼자였고, 지키던 경찰관 의자를 차지하고선 나를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 했다.
“써!”
“예? 뭘요?”
“다시는 데모하지 않겠다는 반성문 쓰라고!”
“예? 반성문이요?”
정말 미친 듯이 휘갈겼다.
반성문을 쓰라는 말은 석방된다는 말과 다름없으니, 그깟 반성문 한 장 쓰지 못할 이유가 뭐 있다는 말인가?
사실 학창 시절에도, 경찰서에 잡혀가면 반성문 하나는 열심히 썼다.
다시는 데모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반성문을 쓴다고, 내가 변절자나 프락치가 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 훈방되는지조차 모르고 나는 서둘러 반성문을 쓴 후, 사흘 만에 바깥 공기를 쐴 수 있었다.
“선배”
“어! 네가 여긴 웬일이고?”
“이거나 드소.”
경찰서 건물을 나서니 대학방송국 후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후배가 건넨 두부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선배, 이번에 X 될 뻔했었소.”
“그러지 않아도 안기부 넘어간다는 말에 잔뜩 졸았었다.”
“그러니까 좀 적당히 하라니까.”
“네 사촌 형이 도와줬어?”
“사촌 형도 이번 건은 어렵더랍니다. 그런데 노태우가….”
이 후배 사촌 형 되는 양반이, 페리 부두 안기부 분실에서 근무하는 안기부 요원이었다.
이곳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도 없었는데 후배가 경찰서까지 찾아왔기에, 나는 당연히 안기부에 근무하는 후배의 사촌 형 되는 양반이 나를 풀어준 줄 알았었다.
그런데 후배 말을 들으니 오늘 아침에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했고, 그 결과 6월 항쟁 기간 체포된 모든 사람을 방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위기는 넘어갈 수 있었고, 두 번째 위기는 바로 연말에 있었던 87년 대통령 선거 때였다.
위에 언급한 내용처럼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공정선거감시단과 투표소를 지키는 전투경찰 사이에 알력이 있었고, 그 일이 어느 정도 해소된 후 나는 다시 개표장 관람석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거기서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을 내 눈으로 확인하였고, 우리 당 개표 참관인들과 함께 목청을 높여 항의했다.
나를 더욱더 분노하게 만든 일은, 방송 기자란 작자들이 취재조차 포기하고 책상만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M 방송사 기자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볼펜만 돌리고 있었고, K 방송사 기자는 아예 책상에 엎어져 잠자는 척하고 있었다.
“야! 이 개XX들아! 그러고도 너희가 기자냐?”
개표소를 책임진 선거관리 위원장에게 강하게 항의하던 야당 소속 참관인들이 모두 퇴장당하고, 관람석에서 목청을 높이던 나도 결국 사복 경찰관에게 개표장 밖으로 끌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