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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울산·경남권
[부산] 부산에서 민주당원으로 산다는 것은 이재호님 -13편
평당원이야기
2025-03-09

6월 항쟁 & 87년 대선(5)


그렇게 분노에 찬 가슴을 차가운 겨울바람에 식히는 가운데 어느새 날이 밝았고, 개표 또한 마무리되었다.
 
“예?”

동래경찰서 정보과에 근무하던 강 형사가, 내 옆을 스치면서 점퍼 호주머니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그걸 눈치챈 나는 강 형사를 불렀지만, 강 형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자기 갈 길을 걸었다.

‘이 형. 당신 체포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알아서 잘 도망치소.’

메모지에는 강 형사가 휘갈겨 쓴 몇 자의 글자가 있었고, 그 내용은 눈치껏 도망치라는 내용이었다.

강 형사의 저런 행동과 메모는, 동래서 차원에서 체포가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윗선이란 의미고, 자칫 체포되기라도 하면 곤욕을 치를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체포되길 기다리는 건 어리석음이란 생각에, 나는 귀엣말로 공정선거감시단 청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개표장을 나가 명륜초등학교 교차로 가까이서 내가 신호하면, 뒤따르는 자들을 잠시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온천장 쪽에서 오는 차를 잘 볼 수 있도록 나는 일부러 도로 왼쪽으로 붙어서 걸었고, 마침 멀리서 택시 한 대가 오는 걸 발견했다.

“지금!”

그 말 한마디만 던지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로변으로 내달렸고, 달려오는 택시 앞에 서듯이 택시를 세웠다.

“빨리요!”

그렇게 택시에 옮겨탄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학 캠퍼스로 숨어 들었다.

대낮에는 캠퍼스 안에서, 그리고 밤이면 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서면 대아 호텔 뒤에 있던 도심이라는 만화방에서 지내는, 도피 생활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가지고 나온 돈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돈 대부분을 개표 당일 추위에 떠는 공정선거감시단 청년들에게 호빵과 두유를 사서 먹이는 데 썼기에, 내 호주머니에 남은 돈이 얼마 남지 않았던 거다.

한 잔에 100원인 자판기 커피도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이고, 점심과 저녁은 가깝게 지냈던 후배들 몇 명에게 빌붙어 구내식당에서 가락국수로 배를 채우고, 잠은 1,000원이면 밤새울 수 있는 서면 도심 만화방서 지내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지출을 줄였음에도, 만화방에서 추위를 피할 1,000원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은 출입이 통제된 서면 지하상가에 숨어 들어, 경비 아저씨 눈을 피해 화장실 입구에 종이 상자 골판지를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서면 지하상가에서 가장 따뜻한 장소가, 바로 화장실 앞 복도였으니까.

그렇게 추위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은 별개였다.

보름 넘게 후배들 등을 쳐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밥 구경한 지가 보름이 넘어가니 뱃속은 항상 허기진 상태였다. 

심지어 그날은, 온종일 가락국수조차 먹지 못했었다.

그날 저녁 지금은 없어진 전포동 쪽 복개도로의 부산은행 계단참에 앉아 있으니, 건너편 포장마차에서 새어 나오는 어묵 냄새가 나를 반쯤 미치게 했다.

호주머니에 동전 몇 개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묵과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어묵 국물이 침을 삼키게 했다.

그때 하필이면 핸드백을 어깨에 걸친 아가씨 하나가 내 앞으로 지나갔고, 순간 내 머릿속에는 ‘저 핸드백 속에 1,000원짜리 한 장은 있겠지?’라는 생각 말고는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생각 없이, 무작정 그 아가씨 뒤만 쫓았다.
 

출처 : 가야일보 "1980 오월의 진실, 1987 부산의 기억! 부산에서 광주까지" 2019.05.15


이래서 선비도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는 말이 생긴 듯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아가씨가 걷는 길은, 예전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자주 다녔던 내가 훤히 아는 길이었다.

병무청을 지나면서도 ‘인적이 끊기기만 하면….’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전포대로를 건널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결국 그 아가씨는 내가 졸업한 부산 동고등학교 교문 앞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교문을 지나 꺾어지는 골목에서 핸드백을 탈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서 핸드백을 탈취하고 뛰면, 내리막길이니 절대 잡히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그때까지도 그 아가씨는, 내가 자기 뒤를 따라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르막을 다 올라 모퉁이를 돌기 직전, 내 눈에 ‘부산 동고등학교’라 쓰인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생각에 내 입에서는 저절로 ‘시파!’라는 욕이 튀어나왔고, 머릿속에서는 ‘내가 이러려고 지금까지 그 지랄했었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명색이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놈이 겨우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길가는 여자의 핸드백을 탈취하려고 했었나 하는 자괴감….

그 생각이 들자마자 미련을 버리기 위해 뛰듯이 그 여자를 제쳤고, 그때 내 눈앞에 야간순찰하던 딱딱이를 든 방범대원 아저씨가 나타났다.

방범대원 아저씨를 본 순간 등골이 서늘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이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만일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가씨 핸드백을 탈취해 도망쳤더라면, 아가씨에게는 잡히지 않았을지라도 방범대원 아저씨들에게는 100% 잡혔을 테니 말이다.

만일 일이 그리되었더라면 똑같이 체포된 상황이었더라도, 영예로운(?) 민주투사가 아닌 여자 핸드백이나 날치기하는 잡범 신세가 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포기하고 내려오자, 배고픔은 여전했지만 속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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