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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이야기
[부산·울산·경남권] 부산에서 민주당원으로 산다는 것은 이재호님 -15편
평당원이야기
2025-03-23

13대 총선 그리고 영도 선거

나에게 있어서 13대 총선은, 마치 지난 12대 총선 당시의 데자뷔처럼 여겨졌다.

12대 총선 당시 집권당 후보가 별 다른 힘을 쓰지 못한 대신, 전혀 예상치 않았던 복병이었던 민한당 후보가 미친 듯이 날뛰었던 것처럼, 13대 총선에서는 집권당 후보는 조용한데 신민주공화당의 노차태 후보가 난장을 친 것이다. 

그랬기에 표 싸움의 상대는 집권당인 민정당 안병해 후보가 아닌, 신민주공화당의 노차태 후보와의 싸움처럼 진행되었다. 
    
지금도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하다.

노차태 후보 측에서 만든 불법 유인물, 그걸 서울에서 우편으로 발송하려다가 우리 측에 빼앗기고, 결국 노차태 측에서는 각 가정에 유인물을 던져 넣기로 했었다.

그 정보를 확인한 우리 청년 당원들은 조를 짜서 골목을 감시했고, 결국 청학동 아리랑 고개 쪽에서 노차태 측 선거운동원들과 각목 싸움까지 벌였었다.

나도 그 싸움에서 왼쪽 어깨를 찍혀 어깨뼈에 금이 갔고, 그렇게 붙잡은 노차태 측 선거운동원들을 청학 파출소로 데려갔다가 청학 파출소가 테러를 당하기도 했었다.

“노차태 측 애들이 습격한답니다.”
“제가 가서 지원군을 모아 오겠습니다.”

청학 파출소가 기습당하고, 우리는 노차태 측 선거운동원들을 당사 옥상에 묶어 두었다.

그런 사실을 안 노차태 측에서는 그들을 구하려고 당사를 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영도청년회 약칭 영청’ 스무 명 남짓으로는 그들의 막기란 불가능했다.

우선 청년들이 가장 많이 합류해 있는 동구의 노무현 후보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어쩐 일인지 그곳에서 청년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서구에 출마한 김영삼 총재 지구당으로 향했고, 거기서도 빈손으로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당시 범일동에 사무실을 둔 민주당 중앙청년회에 SOS를 쳤고, 덕분에 노차태 측의 기습을 무사히 막아낼 수 있었다. “어이~ 깡패 두목!”
“후보님. 뭔 소립니까?”
“당신이 노차태 쪽 깡패들을, 두드려 잡았다던데?”
 
투표 당일 투표 현장을 돌다가, 동삼동 시장 꼭대기 쪽 투표소에서 민정당 안병해 후보를 만났다.

그런데 청학동 아리랑 고개에서 있었던, 한밤의 혈투가 소문났던 모양이다.

그날 밤 우리 청년들이 잡은 노차태 측 선거운동원들이 하나 같이 전과자였고, 그 전과를 합하니 두 자릿수였던 탓에, 저렇게 소문이 난 것이다.
 
13대 총선 결과는 김정길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고, 재선에 성공한 김정길 의원의 앞에는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선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국회의원 임기 채 절반도 되기 전에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인이 밀실야합을 강행했고, 김정길은 누구보다 먼저 3당 야합에 반발했다.

솔직히 3당 야합 소식을 전해 듣고 나뿐만 아니라 영도구 지구당 당직자 모두는, 김정길이 김영삼을 따라 3당 야합에 합류하길 기대했었다. 

당시 내 생각은 정말 단순했다.

집권당에 합류하면 최소한 돈 문제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정말 지극히도 단순한 이유였다.

지금이야 공직선거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선출직의 기부행위가 엄격하게 제한되지만, 1990년대 당시만 해도 국회의원은 봉 아닌 봉이었다.

지구당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이 찾아와 결혼식에 화환을 보내라고 하고, 초상났으니 3단짜리로 조화를 보내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의원회관을 찾아와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영도구 주민임을 확인하게 하고, 지갑을 잃어서 부산 갈 차비가 없다면서 돈을 요구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진짜 황당한 일은 당시 무궁화호 기차 삯에 몇천 원을 보탠 아귀를 맞춘 돈봉투를 건네면, 그걸 확인하고 ‘내가 거지인 줄 알아!’라면서 돈봉투를 얼굴에 집어 던지는 인간도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주민등록증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부터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그랬기에 의원실 살림은 항상 적자였고, 덕분에 김정길 의원 지인들 또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단적인 예가 하나 있다.

지금은 건물조차 없지만 중앙동 부산데파트 건물 옆에, 동아 꽃 화원이라는 꽃집이 있었다.

그 꽃집 사장님이 김정길 의원의 고등학교 선배님이셨는데, 지구당에서 화환을 보내야 할 일이 생기면 항상 그 화원에 부탁해서 화환을 배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지역구 내에 조화(弔花)를 보내야 할 일이 생겼고, 평소처럼 화원에 전화해서 조화(弔花)를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이제 더는 안 된다.”
“예?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외상은 이제 안 된다고.”

결국 화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초상이 났다고 조화(弔花)를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그걸 보내지 않으면 그 일만으로 소문이 더럽게 돌아 표가 깨지니 말이다.

“이거 봐라. 지금 정길이가 꽃값 밀린 게 3,000만 원이 넘지? 이 3,000만 원은 후배 하나 잘못 둔 죄라고 생각하고 포기할 테니까, 이제 더는 꽃 보내달라고 전화하지 마라.”

화원을 운영하는 사장님인, 선배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금 물가로도 3,000만 원이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닌데, 1990년 당시 3,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분명 거액이었고, 그걸 포기하겠다는 사장님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김정길 의원 본인은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몰랐겠지만, 보좌진들에게 돈 문제는 정말 그 어떤 일보다 중요했다.

그랬기에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보좌진 대부분은 김정길 의원이 3당 야합 대열에 합류하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길 의원은 누구보다 3당 야합 합류를 거부했고, 노무현 의원을 시작으로 세를 규합하기 시작했고, 이기택에게 당 총재 자리를 보장하면서 이기택의 잔류를 끌어냈다.

하지만 그 결정은 김정길 의원뿐만 아니라, 김정길 의원을 보좌하던 보좌진 모두에게 가시밭길을 걷는 출발점이 되었다. 
   
14대 총선 낙선, 14대 사하구 보궐선거 낙선, 15대 총선 낙선, 16대 총선 낙선, 17대 총선 낙선, 제5회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 낙선, 19대 총선 낙선.

1990년 3당 야합 이후 대한체육회장직으로 재임하던 18대 총선을 제외한 모든 선거에 출마했지만, 김정길이 보수의 아성(牙城)이라 할 수 있는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되기란 요원했다.

오죽했으면 내가, 김정길 전 장관에게 이런 말까지 했었겠는가?

“장관님은 영도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선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대신 장관님이 다른 우리 당 후보를 장관님 선거처럼 지원하시면, 그 사람은 충분히 당선시킬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일곱 번의 낙선 릴레이 중에서, 17대 총선은 당선될 가능성이 충분히 보였던 선거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추진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무색무취한 정치력에 대한 피로감이 그 이유였다.

선거 막판까지 우위를 보이던 여론이었지만, 그 바람은 당시 정동영 당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광주에서 부친이 약국을 운영하신다던 현주라는 이름의 여학생 눈물이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떻게 장관님 같으신 분을….”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처한 현실을, 현주라는 그 여학생은 17대 영도구 선거에서 처절하게 경험했을 것이다.

한나라랑 사람들이 전라도를 향해 비아냥거렸던, ‘전라도에서는 민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라는 비아냥거림처럼, 부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김정길의 3당 야합 합류 거부라는 선택은, 일반적 관점에서는 지극히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길을 1987년 이후 2013년까지, 그가 은퇴하던 시점까지 27년이란 세월 동안 그를 보좌하면서 함께했던 나로서는, 김정길의 당시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패배의 아픔을 곱씹으면서 다음을 기약했지만, 김정길은 13대 총선 이후 단 한 번도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게 김정길은 소신 있고 정치력 있는 정치인이란 인식이 각인 되었을 것이니, 그런 정치인을 평생 모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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