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길 전 장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참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많다.
그중 몇 가지를 꼽자면, 바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지역감정 타파’와 ‘3당 야합 거부’ 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사안의 원조이자 원래 주인은 김정길이 분명하다.
지난 7월 말 서울에 갈 일이 있었고, 마포구에서 김정길 전 장관을 만나서 한 말이 있다.
“제가 10년만 더 빨리 장관님을 만났더라면, 아니 장관님께서 절 10년만 더 빨리 저란 인간에게 힘을 실어주셨더라면 좋을 뻔했습니다.”
“와?”
“그랬더라면 ‘지역감정 타파’와 ‘3당 야합 거부’ 아이템을, 노무현 쪽에 빼앗길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쓸데없는 소리 한다. 누가 하든지 그게 무슨 대수고. 누가 했든지 결과만 좋으면 되지.”
“장관님은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억울할 일이 뭐가 있나. 나 대신에 노무현이 잘했으니 됐지.”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를 가장 먼저 주장한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정길이었다.
김정길이 부산대학교 총 학생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걸었던 공약이 바로 영호남 지역감정 타파였고, 총 학생장 당선 후 김정길은 전남지역 대학과 자매결연을 하여 부산대 학생을 이끌고 농촌봉사활동을 가기도 했다.
김정길은 말로만 지역감정 타파를 외쳤던 게 아니라, 생활 자체가 지역감정 타파를 실천한 양반이다.
바로 부인이 전남 고흥 출신이고, 지구당 당직자 역시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을 반씩 임명했었다.
3당 야합 반대 건도 마찬가지고, 3당 야합 반대의 결과물인 꼬마민주당 창당은 김정길이 주도했다.
민자당에 합류했던 이기택에게 당총재 자리를 약속해서 다시 불러들였고, 박찬종 이철 장석화 김광일 등도 김정길이 포섭했다.
그렇지만 대부분 국민은, 3당 야합 거부의 주역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이야기한다.
당시 기억으로 노무현 의원은 초선의원으로 3당 야합 거부를 주도할 만한 위치가 아니었고, 후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웃사이더였다.
그런 양반이 무슨 재주로 3당 야합 거부를 선도하고, 그 주장이 당 소속 의원에게 먹힐 수 있다는 말인가?
거기에다 내가 알기로 당시 노무현 의원은 14대 총선 낙선 후, 원래 몸을 담았던 시민사회단체 활동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거로 기억한다.
노무현 의원에게 정치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을 뿐이고, 그런 성향으로 인해 그는 당내에서 항상 아웃사이더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대통령 탄핵 결의안 덕분에 당선된 ‘탄돌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그들에게서조차 임기 내내 도움받지 못했던 외로운 대통령이었다.
만일 그들 중 일부라도 노무현을 지지하고 따랐더라면, 노무현의 마지막이 그렇게 비극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노무현 이름을 팔아 정치하는 자들은, 예전 보수 언론에서 지적하던 ‘관 장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하는 결과물이라는 ‘지역감정 철폐’와 ‘3당 야합 거부’는, 그냥 정치인 노무현의 참모진이 만든 여론몰이에 대중이 세뇌된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를 반노(反盧) 또는 비노(非盧)라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초창기 노사모 회원이면서 내가 자칭 친노(親盧)란 자들은 경멸하지만, 노무현은 여전히 좋아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좋아하고 존중하지만, 우리 뒤에 올 세대에게 제대로 된 사실은 알려줘야 하기에 이렇게 묻힌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어쨌든지 간에 내가 아는 바로 정치인 노무현은,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에게 몇 가지 갚지 못한 빚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당시다.
당시 기사를 확인해도 증명될 일이지만, 당시 김정길은 최고위원 1등 당선이 확실시되었던 후보였다.
꼬마민주당계에서는 당연히 김정길을 지지할 게 분명했고 DJ의 후광마저 받던 상황이니, 애초 김정길의 낙선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인지 김정길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나는 어차피 당선될 테니까 나를 찍을 표로 노무현을 찍어주십시오.’라고 외치고 다녔었다.
그 결과는 김정길의 낙선과 노무현 최고위원 당선이었고, 우리끼리 하는 말로 김정길은 까불다가 낙선한 것이다.
물론 당총재도 아닌 그깟 최고위원이, 무슨 대수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사실 낙선한 정치인에게 가장 무서운 일이 대중의 기억에서 잊히는 일이란 점이다.
어쩌면 당시 노무현의 최고위원 당선은, 후일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후일 당선이 보장된 종로구를 버리고, 다시 민주당으로서는 동토의 땅인 부산으로 돌아왔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 노무현의 종로구 보궐선거 출마다.
정치 낭인 노무현이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지역구를 종로구로 옮길 명분이 없어 망설였었다.
그때 김정길이 나서서 노무현의 지역구인 중·동구를 대신 맡기로 하고, 그 결과 노무현의 종로 출마가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김정길이라는 한 정치인을 모시면서 배운 점이라고 한다면, 정치를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명분과 소신이라는 점이다.
당장에는 그 소신과 명분이 영예를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배지조차 달아보지 못한 채 정치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최소한 국민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김정길이라는 정치인을 통해서 배웠다고나 할까?
지금 이야기한 노무현의 빚이, 정계를 은퇴한 김정길에게 도움이 될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숨겨진 역사적 진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