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0년대에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평범했지만, 항상 약자에 대한 연민이 컸다. 어머니는 정 많고 강한 분이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자랐다.
19살 때 공무원이 되어 하동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 나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 당시 나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며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게 되었다. 정부와 언론은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았고, 김대중 대통령께 책임을 뒤집어씌웠다. 그러나 나는 진실을 보았다.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쳤을 뿐이었고, 그에 대한 응답은 총칼과 학살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1980년, 내가 21살이 되던 해였다. 당시 나는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광주의 참상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언론통제가 극심하여 정보가 왜곡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사적 실체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광주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일어나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한 것이었고 이를 간악한 방식으로 시민들을 학살한 것임을... 광주에서 민중을 학살하고, 그 책임을 김대중에게 덮어씌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두환이 대통령 되고 싶어 그런 살상을 했고 정적이었던 김대중을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오히려 광주시민을 선동하여 내란을 일으켰다는 말도 안되는 루머를 퍼뜨린 것이다. 광주시민들이 억울하게 죽고 김대중 같은 정치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쓴 아픔에 대해 동정심이랄까? 그런 마음이 들면서 내 마음에 보다 깊은 호기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20대 청년인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짓과 폭력이 판치는 시대 속에서 김대중님의 저서들을 읽으며 그분의 진정성과 비전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이분은 정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오신 분이고 모든 정치 문제를 남북한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하며 정의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DJ를 지지하게 되었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약자에 대한 공감과 사랑이 강한 편이었다. 경남출신인 나로서는 정치적으로 YS와 더 가까울 수 있었다. 만일 YS가 DJ 같이 핍박받고 감옥가고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YS의 편에서 정치운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DJ가 더욱 억울한 상황이었고 그런 부당함에 대한 분노, DJ에 대한 동정심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