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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이 걷지 않은 길” 87년도 민주화운동의 증인, 한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한명철님 -4편
평당원이야기
2025-04-27

1987년 대선과 평화민주당 마산지구당

1987년 11월, 평화민주당이 창당되었고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같은 달에 통일민주당은 김영삼 당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사실상 단일화에 실패한 후폭풍이었다. YS, DJ 모두 창당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이 움직였다. 당이 갈라졌기 때문에 중앙당 외에 지구당을 모든 시군에 설치하기엔 시간적 여력이없었다. 특히 평민당의 경남 지역이 그랬다. 마산, 창원, 함안, 거제 등에 겨우 지구당을 설치하였다. 마산은 설훈, 창원에는 김기수, 함안은 이상익, 거제는 윤병안 등이 있었고 나머지는 지역 책임자 정도가 있었는데 하동, 거창, 밀양 정도가 있었다. 지구당을 만들 규모도 안되고 지역에 한두명 있으면 지역 책임자가 되는 것이었다. 

1988년 평민대학 4기 연수, 남한강 연수원에서 

나는 마산지구당 조직부장을 맡았다. 당시 대학도 휴학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니 졸업은 기약이 없었다. 내가 대학졸업을 한 것이 1991년이니 입학후 11년이 지난 30대 초반이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들 것이다. 

1987년 경남에서 평민당으로 김대중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거의 목숨을 내걸어야 할 정도로 살벌했다. 당시에는 선거 공영제가 없었기에 각 당에서 알아서 벽보를 붙이고 홍보물을 나눠주곤했다. 선관위에서 일괄배송하고 포스터도 다 붙여주는 지금과는 천지차이다. 내가 DJ 벽보를 붙이면 술먹고 나온 사람들이 욕설을 하고 심지어는 뒤에서 때리고, 보는데서 벽보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선거운동원들마다 상황은 비슷했다. 선거 유세할 때는 차옆에서 포스터를 찢고 불태우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생명이 위협을 받아 중앙당에 연락을 했더니 광주에서 경호단을 보내주어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운동원들의 포스터 부착과 선거운동에서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보호해 주었다. 
DJ가 마산에서 유세할때는 차 두대가 불탈정도였다. 정말 영남에서 선거운동하는 것은 마치 적진 한 가운데서 전투를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경남지역의 호남 향우회 회장님을 만나 도와달라고 했고 경남대에서 호남출신들을 불러 모아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벽보를 붙였다. 이에 중식당에 100여명 정도가 모였다. 나는 그때 나서서 일장 연설을 했다. 

1988년 평민대학 4기 수료식때 필자

“여러분, 나를 도와 우리 김대중 대통령 선거에 함께 해 주십시오.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매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10명씩이라도 교대로 일주일에 한두번이라도 와서 도움을 주시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팀을 만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선거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87년도 대선에서 우리는 우리 돈을 써 가면서 선거에 뛰어 들었다. 서울에서 공보물이 지구당으로 내려오면 직접 트럭에 싣고 다니며 붙였다. 정말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서 장사하는 분들, 직장인들도 시간날때 와서 도와주고 밥도 사주곤 했다. 그렇게 서로서로 격려하며 후원금을 만들고 자원봉사를 기반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꽃피운 토양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최종 투표일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선거를 뛰었다. 하지만 민주세력이 단일화하지 못한 탓에 결국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김대중은 3위에 그쳤다. 개표 방송을 보고 난 후 설훈 님과 나는 같이 나오면서 울었다. 그리고 같이 사우나 가서 좀 쉬고 나왔는데 설훈님이 동교동에 연락을 넣었다. 

“지금 총재님 뭐하시냐? 지하실 서재에 혼자 계시다고? 알겠다.” 
 
그렇게 1987년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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