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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
[서울] 평화와 민주의 전달자 임춘배님 -1편
평당원이야기
2025-04-27

기회의 땅에서

나는 1952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한창때였다. 부모님께서는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셨고, 나 또한 어린 나이부터 농사일을 도왔다. 이른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비록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따뜻한 가르침 덕분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마을에서 가장 먼 학교까지 걸어 다니며 공부했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라 동네 형들에게서 헌책을 빌려 보며 지식을 쌓았다. 부모님께서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셨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커졌다. 하지만 셋째아들로서 학업보다는 생계가 우선되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열여섯 해를 고향에서 살다가 1968년 3월 4일에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서울로 올라왔다. 고향에서는 16년을 살았던 거다. 서울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여러 공장을 다니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신문보급소도 다니고 세탁공장도 다니고 돈이 없으니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25세가 되던 해에 화물운송업을 해 보라는 제안이 있었다. 이에 방산시장에 있는 화물업체에 취업을 해서 6개월정도 일을 배운 뒤에 형님하고 같이 운송업을 시작했다. 방산시장은 일제강점기 소규모 시장으로 출발했지만 광복 이후 미군이 주둔하며 을지로 6가 쪽의 방산종합시장은 '양키시장'으로 알려지기도 한 곳이었다. 1960년대에는 통조림, 조미료 등의 식료품이나 과자류를 팔며 도매시장으로 발전하면서 방산초등학교터에 방산종합시장이 1976년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와 함께 물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동대문 시장 근처에 있는 이화사거리 옆 이화 예식장 옆에서 호남 정기화물 종로5가 영업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1970년대 청량리역 (출처 - 동대문구 기억여행)

큰 형님이 사장을 맡고 나는 영업을 맡아서 뛰었다. 1976년에 청량리 영업소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6개월 만에 흐지부지됐다. 아쉬웠다. 그래도 포기 안 하고 1977년에 다시 청량리 영업소를 맡아서 운영했다. 

70년대 청량리는 경춘선과 중앙선 철도가 연결되는 물류와 여객수송의 중심지여서 전국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경동시장, 청량리종합시장 등이 개설되어 서울 동부의 가장 중요한 상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청량리역에서 서울역까지 연결된 것은 그만큼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하철 역 개통 등으로 청량리에는 일거리가 넘쳐났고 우리 형제들은 같이 화물 운송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부이촌동에 있는 호남정기화물 용산 영업소로 옮겨 보다 많은 물류를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호남정기화물 전국 영업소중에 우리 영업소 물류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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