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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도권
[수도권] “이미 끝난 선거인데, 왜 나서서 그래?” 1997년 7월의 기록 곽동진님 -1편
평당원이야기
2025-06-22

"이미 끝난 선거인데 왜 나서서 그래?" (상)

1997년 나는 의왕시 포일리에 거주했다. 15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1996년 5월30일부터 천용택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했기에 매일 아침 포일리에서 과천으로 나와 과천에서 국회 통근버스로 갈아타고 국회로 출근했다. 1997년 7월 30일 새벽은 수 십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에 남을 만큼 여느 날과 달랐다. 평소처럼 국회 통근버스를 기다리는데 국방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여 알고 지내던 신한국당 국회의원 보좌관이 말을 건넸다.

"이미 끝난 선거인데 왜 나서서 그래? " 

신한국당 보좌관의 "이미 끝난 선거"라는 말은 1997년 7월 하반기까지 15대 대통령 선거 상황을 표현한다. 이회창 후보의 승리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는 선거에 너무 나서다가 승자에게 찍히지 말라는 무서운 충고(?)였다. 

신한국당 보좌관의 이회창 후보의 '97대선 승리 확신은 그 보좌관만의 예상 또는 확신이 아니었다. 김대중 총재(이하 김총재)의 패배를 예측하는 기류는 김영삼 대통령과 일반 시민뿐 아니라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 내부에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대선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국민회의 내부의 김총재 패배 여론을 보여준 것은 ‘제 3후보론’이다. 국민회의 비주류 의원들은 96년 4.11 총선 패배이후 김총재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며 제3후보론을 제기했다. 년초부터 동아일보(1997.1.1.)는 ‘신한국당 후보 당선 가능성 압도적’으로 보도했고, 경향신문(1997.01.03.)은 김총재가 이회창, 박찬종, 이홍구와의 양자대결에서는 상당한 격차로 뒤지고 있음을 보도했다. 김총재는 다자 대결에서도 1위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제3후보론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제3후보론은 1997년이 되면서 비주류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어떤 중진 의원은 ‘DJ가 불출마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비주류가 대안 인물로 거론한 제3후보는 조순 서울시장이었다. 조순 시장도 김총재가 자신에게 양보해주기를 바랬다. 제3후보론은 국민회의 대선후보로 김대중 총재가 선출된 이후에야 소멸됐다.  

내 눈에는 총재를 제 3후보로 대체하겠다는 의원들이 한심했다. DJ없는 새정치국민회의는 존재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 3후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뿐 아니라 호남인에게 총재 외에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는 없었다. 총재만이 지지자를 결집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할 능력이 있고, 호남인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 희망이었다. 반드시 97년 대선에서 총재가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97년 대선에서 나의 의지였다. 그러니 신한국당 보좌관의 협박성 충고는 웃긴 소리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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