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해에 군 입대를 하였다. 광주에 있는 조선대 1학년 재학 중, 학변신검으로 일주일만에 우선징집 대상이 되어 군에 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헌병으로 선발되어 육군 제7102부대 헌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정확히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에 위치한 육군교도소 경비부대에 배속된 것이었다.
육군교도소에 배치되어 처음에는 외곽 경계 근무를 맡았지만, 시간이 지나 특수동으로 발령되었다. 특수동이란 말하자면 '국가가 두려워한 인물들'이 수감된 곳이다. 그곳은 내가 특수동으로 옮겨가기 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잠시 그곳에 수감되어 있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한 이후에는 내란음모 혐의로 투옥된 김대중 총재님과 여러 민주 인사들이 갇힌 곳이었다. 수감자 명단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보여주는 인물사전과 같았다. 김대중 총재, 문익환 목사, 이문영 교수, 예춘호 전 공화당 사무총장, 고은 시인, 김상현 의원, 그리고 서울대 복학생 이신범, 설훈, 이해찬 등이 그곳에 있었다.
흥미롭게도, 정치범을 주로 수용하는 특수동에는 경상도 출신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전라도 병력으로는 내가 유일했다. 전라도 무안 출신인 내가 이곳에 배치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김대중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을 주선하려는 신의 가호였을까?
나는 5.18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전두환 신군부가 벌인 시민 학살과 폭력의 실상, 그리고 언론 조작으로 그 모든 진실이 덮이고 왜곡되어 오히려 광주 시민이 폭도로 바뀌었다는 실상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 총재님의 투옥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수동 근무를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엄격한 경고였다. "그들은 정치범이 아니라 사상범이다. 말도 잘하고, 머리도 빠르다. 단 한마디도 섞지 마라. 그러다 너희가 넘어간다." 우리는 30분마다 수감자들의 행동을 기록해 상부에 보고해야 했다. 누가 책을 읽고, 누가 산책을 하고, 누가 창밖을 바라봤는지, 그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 안에서도 마음을 나누는 존재다.
김대중 총재님을 처음 뵈었을 때,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뻔했다. 신문과 뉴스 속에서 보던 '그분'이 수의를 입고 내 눈앞에 계셨지만, 그분의 품격은 그대로였다. 기품, 인내, 그리고 절제된 말투에서 나는 이분은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냥 느껴졌다.